싱가포르국립대(NUS) 의대 생명과학연구소 한켠에 낯선 서버랙이 들어섰다. 겉모습은 여느 데이터센터 장비와 다르지 않지만, 그 안에서 연산을 담당하는 것은 반도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의 신경세포다. 데이터센터 기업 데이원(DayOne)은 지난 8월 17일, 호주 코티컬랩스(Cortical Labs), NUS 의대와 함께 싱가포르 최초의 '생물학적 데이터센터(Biological Data Centre)' 시제 설비를 구축했다고 발표했다. 프로토타입은 이에 앞선 8월 6일 공개됐다. 코티컬랩스의 생물학적 컴퓨팅 장치 'CL1' 20대를 묶은 형태로, 세 기관은 이를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세계 최초의 생물학적 통합 서버랙"이라고 설명했다. [ 실리콘 칩 위에서 자라는 뉴런 ] CL1의 핵심은 '웻웨어(wetware)'라 불리는 구조다. 줄기세포에서 분화시킨 인간 뉴런을 실리콘 칩 표면에 배양하면, 신경세포가 칩 위로 뻗어 나가며 전기 신호를 주고받는 회로가 만들어진다. 장치 내부의 생명유지 시스템이 온도와 영양을 관리해 뉴런을 최대 6개월간 살려 둔다. 이 회사가 앞서 선보여 화제가 됐던 '디시브레인(DishBrain)'은 CMOS 칩 위 80만 개의 인간·생쥐 뉴런으로 퐁(Pong) 게임을 학습한 바 있다. 연구진이 강조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전력이다. 세 기관은 생물학적 컴퓨팅이 "디지털 컴퓨터가 요구하는 전력의 일부만으로" 작동한다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인 소비전력 수치는 공개하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학습 방식이다. 혼 웽 총 코티컬랩스 창업자 겸 CEO는 "생물학적 컴퓨팅은 데이터가 희소한 영역에서 AI를 보완한다. 훨씬 적은 데이터로 학습하고, 조건이 변하면 스스로 적응한다"고 말했다. 수천억 개의 파라미터와 막대한 전력을 요구하는 현행 거대언어모델과는 정반대의 접근인 셈이다. NUS 의대에서 뉴런 배양을 맡은 리키 파타니 신경생물학 프로그램 디렉터는 "줄기세포에서 살아 있는 인간 뉴런을 키우고 정밀한 공학과 결합함으로써, 실리콘보다 효율적인 대안을 만들고 있다"며 "학습과 적응을 그 생물학적 근원에서 이해할 수 있는 플랫폼"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활용처로는 신경모사 AI, 생의학 모델링, 신약 개발, 신경질환 연구가 거론된다. 코티컬랩스는 여기에 휴머노이드 로봇, 사이버보안, 이상거래 탐지까지 상업적 응용 범위를 잡고 있다. [ 왜 싱가포르인가 ] 데이원은 2022년 설립돼 아시아태평양과 유럽 9개 시장에서 사업을 벌이는 데이터센터 기업이다. 지난 6월 45억 달러 규모 시리즈C 투자를 유치했고, 500MW 이상의 설비를 운영·건설 중이다. 국토가 좁고 전력 여건이 빠듯한 싱가포르는 데이터센터 신규 허가를 엄격히 제한해 온 나라다. 제이미 쿠 데이원 CEO가 "싱가포르에 대한 우리의 약속은 용량 그 이상"이라며 "연산을 확대하면서 자원 집약도를 낮추는 일을 함께 추구할 수 있다"고 말한 배경이다. 이번 시제기는 호주 외 지역에서 처음으로 대규모 생물학적 데이터센터를 세우기 위한 전 단계로 설명된다. [ 교실에서 던져볼 만한 질문들 ] 이 소식은 정보·컴퓨터 교육의 관점에서 흥미로운 소재를 여럿 품고 있다. 첫째, '컴퓨터란 무엇인가'라는 정의의 확장이다. 학생들은 컴퓨터를 곧 반도체와 0·1의 이진 체계로 배운다. 뉴런이 연산을 수행한다면 계산의 물리적 기반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튜링 이래의 명제가, 추상적 이론이 아니라 실물 장비로 교실에 들어오는 셈이다. 둘째, AI의 에너지 문제다. 최근 초등·중등 AI 교육이 '어떻게 쓰는가'에 집중돼 있다면, 이 사례는 '그 계산의 대가는 누가 치르는가'를 묻게 한다. 데이터센터 전력과 냉각수 문제는 지속가능성 교육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셋째, 생명윤리다. 인간의 신경세포를 연산 자원으로 사용하는 것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뉴런 집합체가 감각이나 의식을 가질 가능성은 현재로선 극히 희박하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대체적 입장이지만, 학계에서는 '조직체 감각능력(organoid sentience)' 논의가 이미 진행 중이다. 정답이 없는 만큼 토론 수업 소재로는 오히려 적합하다. 다만 성급한 기대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번 발표는 상용 서비스가 아니라 20대 규모의 프로토타입이며, 성능 벤치마크나 전력 효율의 정량적 근거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코티컬랩스의 누적 투자 유치액은 1,100만 달러 수준으로, 투자자 명단에 미 중앙정보국(CIA) 산하 벤처인 인큐텔(In-Q-Tel)이 포함돼 있다는 점도 함께 읽을 만한 대목이다. 뉴런의 6개월 수명, 배양 재현성, 오염 관리 같은 실무적 난제도 남아 있다. '실리콘의 대안'이라는 표현이 언제 현실이 될지는, 앞으로 나올 검증 데이터가 답할 문제다. ※ 출처: PR Newswire(2026.8.17), NUS Medicine 보도자료, Data Center Dynamics ※ 이미지는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제작한 그림입니다.